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쥴 앤 짐
감독 프랑수아 트뤼포 (1962 / 프랑스)
출연 잔느 모로, 오스카 베르너, 앙리 세르, 바나 우르비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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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언제나 '홀수'로 이루어진 관계가 정말 싫었다. 중학교 2학년 때가 바로 그 때였는데, 그 당시 나는 절친한 친구 둘과 함께 셋이서 무척 친하게 지냈었다. 우리는 무척이나 잘 맞았고, 이 친구들과 일년동안 계속 사이좋게 지내리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좀 더 집이 가까운 친구 둘이서 친해지게 되고 나는 그들과 점차 멀어진 채 새로운 친구를 찾아야만 했다. 왜 사람들이 그렇게 홀수의 관계를 기피하는지를 몸소 체험할 수 있었달까. 홀수는 완벽하게 나누어 떨어지는 숫자가 아니기에, 언제나 혼자 남는 사람이 발생하게 된다. 그래서 나는 그 다음부터는 짝수의 관계만을 추구하게 되었다. 어쨌든, 사람들과의 관계 맺기 속에서 버림을 받는다는 것은 몹시 쓸쓸하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나는 언제나 드라마나 영화 속의 삼각 관계가 너무 싫었다. '분명 저러다가 한 명은 버림받게 될텐데'라는 생각이 머릿 속을 지배하고 있었고, 어릴 때의 기억이 남아있어서인지 나는 언제나 주인공 커플보다는 혼자 남겨진 사람을 보며 안타까워했다. 그 감정이 비록 자기 연민으로부터 비롯된 것일지언정, 내게 홀수의 관계는 언제나 불안정 그 자체였다.

  그래서 나는 프랑소와 트뤼포의 <쥴 앤 짐>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셋이 함께 있을 때가 가장 행복했다니, 정말 이상적인 세계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현실은 그와 멀리 동떨어져 있었고 그 덕분에 이 영화는 내게 그저 '판타지' 그 자체로만 느껴졌다. '그들만의 세상'이라는 단어를 이럴 때 사용해야 하는 것일까. 물론 시간이 지날수록 사회의 인식은 개방적으로 변해만 갔고, 영화에서도 셋의 관계가 가장 행복하다는 다소 쿨한 결말을 내놓는 게 일종의 유행처럼 번졌지만 나는 언제나 '현실에서도 저게 가능할까?'라는 시니컬한 물음을 지울 수가 없었다.


 

 1961년에 나온 영화 <줄 앤 짐>은 삼각관계를 다룬다. 오스트리아인 쥴과 프랑스인 짐은 무척이나 친한 친구다. 그들을 보고 사람들은 세르반테스의 소설 「돈키혼테」의 돈키호테와 산초에 빗대어 부르기도 했는데, 어느 날 함께 본 석상의 미소에 반하게 된 채 그와 같은 미소를 가진 여인 까트린을 만나게 된다. 그리고 둘은 모두 까트린에게 반하게 된다. 그렇게 세 사람은 즐거운 시간을 보내는데, 그 중 쥴과 까트린이 서로 사랑에 빠진 채 짐은 그들을 바라보며 슬퍼한다. 그리고 쥴과 까트린은 결혼을 하게 되고 짐은 1차 대전에 참전하게 된다.

전쟁이 끝난 후 짐은 쥴과 까트린의 집에 방문하는데, 쥴은 짐에게 그녀의 마음이 이미 자신에게 떠난지 오래라는 말을 털어놓게 된다. 그리고 자신은 이제 친구로 남겠으니 짐과 까트린이 서로 사랑했으면 좋겠다는 말을 덧붙이게 된다. 그렇게 짐과 까트린의 관계가 지속되고, 짐은 자신의 일 때문에 파리로 다시 돌아가게 된다. 까트린은 짐이 애인 질베르트와의 관계를 청산하지도 못한 채 파리에 계속 있는 것을 불만스럽게 생각하고, 짐은 이들에게로 다시 돌아오지만 까트린의 성격으로 인해서 둘은 결별하게 된다. 그렇게 둘의 사이는 영영 끝나게 된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 짐은 파리에서 쥴을 만나게 된다. 쥴은 까트린과 그들의 딸과 함께 파리로 온 상태였으며, 짐에게 까트린이 보고싶어한다는 소식을 전하게 된다. 그리고 셋은 만나게 되는데, 까트린의 성격은 이전과 변함이 없었다. 그 이후 까트린은 짐에게 자신과 함께 드라이브를 하자고 제안을 하고 짐은 차에 올라타게 된다. 그리고 까트린은 강가에 빠짐으로써 동반 자살을 하게 되고 짐과 까트린은 죽음을 맞이하게 된다.

  1950-60년대 프랑스의 누벨바그를 이끌었던 트뤼포의 대표적인 작품 <쥴 앤 짐>은 이처럼 세 남녀의 애정 관계를 그려낸다. 짐과 쥴이라는 두 남자와 까트린이라는 한 여인과의 관계가 바로 그것인데, 셋의 관계는 한 명이 버림받는 관계가 아닌 모두 다 연결되어 있는 통합적인 관계를 구축한다. 이는 이들의 관계가 '까트린'이라는 여인을 중점으로 하여 이루어지고 있기 때문인데, 쥴과 짐은 그녀를 마치 여왕처럼 존중해주고, 그녀는 이들의 모습을 그대로 받아들인다. 그렇기 때문에 이들 셋의 관계는 어느 한 명도 버림받지 않는 일종의 구속적인 관계가 되어버렸는데, 영화 속에서 세 명이 가장 행복했던 순간은 바로 그 누구도 혼자가 되지 않았던 그 때였다. 무엇보다도 이 영화에서 가장 중점을 두어야 하는 배우 또한 까트린 역을 맡은 '잔 모로'다. 영화 속에서의 잔 모로의 매력은 바로 천진난만한 태도와 미소에 있는데, 이러한 이유 때문인지 영화는 흑백임에도 불구하고 '봄날'같은 느낌을 풍기기도 한다.




 앙리 피에르 로셰가 칠순을 넘긴 나이에 발표한 그의 자전적 소설 <쥴 앤 짐>은 세 예술가 사이에서 벌여졌던 삼각관계를 기반으로 쓰여졌었다. (후에 그 중 한명이었던 여류화가 베아트리스 우드는 실제와 소설이 많이 다르다고 언성을 높였다고 하지만) 하지만 트뤼포의 <쥴 앤 짐>은 세 명의 청년들을 주인공으로 내세운 채 그들의 청춘, 사랑, 삶과 죽음, 예술 등의 이야기를 펼쳐나간다. 오래전 나의 친구는 이 영화가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연애 영화라면서 까트린 역을 맡은 여배우 잔 모로에 대한 이야기를 펼쳤던 기억이 난다. 그 당시 나에게는 영화 속 까트린의 캐릭터가 도통 이해 불가능이었기 때문에 친구의 말이 이해가 가지 않았지만, 다시 보게 되니 한편으로는 친구의 말이 이해가 간다.

 영화 속에서 가장 중요하다고 할 수 있는 까트린 역에 공감가느냐, 마느냐가 바로 이 영화의 감상 포인트가 아닐까. 그녀의 캐릭터는 얼핏 보면 자기 중심적으로 느껴지지만 한편으로는 자유가 느껴진다. 그 당시로써는 획기적이라 할 수 있는 남녀간의 평등한 가치관을 가지고 있는 까트린은 자유로운 정신의 소유자다. 예를 들어서, 영화의 초중반부에 까트린이 강물 속에 뛰어드는 장면이 등장하는데, 그것은 바로 기존의 남성들의 사상에 반발하는 그녀의 표현방식이었다. 가끔 그녀의 자유로움이 자칫 극단적으로 느껴지기는 하지만, 영화 속에서 가장 큰 리듬을 조성하는 것은 바로 까트린의 캐릭터다. 

  나는 아직 홀수 관계 맺기를 기피하고 있지만, 이전과는 달리 지금은 영화 속 인물들에게 공감이 간다. 영화 속에서 셋은 정말 행복해 보였고 서로를 소중히 여기는 것처럼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그 때의 나는 친구들을 그리 소중하게 생각하지 않았기 때문에 미련 없이 그 둘과 멀어지게 된 걸까 하는 생각도 든다. 결국 이 셋이 서로에 대해서 생각하는 감정의 변화에 따라 관계가 일그러졌듯이, 가장 중요한 것은 사람들이 서로를 생각하는 그 마음이 얼마나 소중한지의 여부가 아닐까 싶다. 그래서 난 이제 이 영화가 연애 영화라 주장하던 친구의 말에 어느 정도 동의가 간다. 어찌되었든, 짐과 쥴은 까트린을 동시에 너무나도 사랑했기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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